고통이라는 선물(The Gift of Pain) - 독후감
이기언 2012-06-04 23:25:40 88

 고통이라는 선물(The Gift of Pain)

 

 

(폴 브랜드, 필립 얀시 지음/송준인 옮김)

 

            환자를 진료하는 폴 브랜드 박사

 

 

싱그럽게 푸른 숲 속을 산책하거나, 흰눈이 온 세상을 하얗게 덮은 정경을 지켜보면 세상만물은 참으로 평화롭고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세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도처에 아픔과 고통이 숨겨져 있다. 동물들은 먹이사슬에서 살아남기 위한 사투를 벌이고, 인간의 삶 또한 이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생존경쟁의 다툼 속에서 나만 잘살면 다른 사람에게는 쓰레기로 만든 만두를 먹여도 개의치 않는 끝없는 탐욕 속에 서로 물고 뜯기고 피 흘리며 다투는 아비규환의 세계로 치닫는다.

그러나 이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존재는 시들고, 다치고, 병들어 결국에는 죽는 것으로 끝맺음을 한다. 왜 하나님은 이 세상에 고통을 포함시키셔서 이 세상을 힘들게 만드셨을까? 이 세상에 고통이 없다면 얼마나 편안할까? 놀랍게도 고통이 없는 세계가 이 세상에 실제로 존재함을 알게 된 것이다.

나는 영국의 유명한 정형외과 의사인 폴 브랜드(Paul Brand)박사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필립 얀시(Philip Yancey)의 유려한 필치로 공동집필한「고통이라는 선물(The Gift of Pain)」을 우연히 발견하였다. 참으로 역설적이고 억지 같은 제목이다. 그러나 읽다보면 점점 그의 이야기가 사실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고통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라고....

폴 브랜드의 부모는 영국선교사로 가난과 질병 등의 열악한 환경으로 현지인들조차 기피하는 인도의 오지이며 학질모기의 서식지로 ‘죽음의 산’이라는 뜻의「콜리 말라이(Kolli Malai)」에 정착한다. 그곳은 집을 지으려고 평지에서 데리고 온 목수 6명 중에 5명이 열병이 무서워 이내 도망쳐버린 해발1200m 산꼭대기 외딴 곳이었다. 여기에서 아버지가 직접 병원과 학교건물을 짓고 또 진흙으로 지은 교회를 시작한다. 학교 수업은 빵 나무위에 가설공부방에서 어머니가 밧줄에 매달아 놓은 과제물을 끌어올려하였고, 아버지는 흰개미 떼와 도마뱀을 직접 보여주며 자연의 신비에 대해 가르쳐주었다.

어린 브랜드의 눈에 자연의 세계는 고통이 늘 그에게 가까이 있었다. 요리사가 꽥꽥거리는 닭의 머리를 자르면, 머리가 잘린 그 닭의 몸뚱이는 피가 솟구치기를 멈출 때까지 미친 듯이 날뛰어 다니고, 밤중에 전갈이 기어 다니는 마당을 가로질러 화장실을 갈 때면 항상 두려워 바짝 긴장하여야했다. 아버지는 선교지의 무속 사제가 기독교로 개종하지 못하도록 마을사람들을 위협하는 어려움 속에서 그들에게 서혜 임파선종, 장티프스, 말라리아, 소아마비, 콜레라 천연두 등의 무서운 전염병과 기니 기생충에 감염된 환자들을 치료해주며 6년의 거센 저항을 버틴 끝에 첫 신자를 얻는다. 그 후 몇년 동안에 50명의 교회로 성장하고 병원은 1년에 12,000명의 환자를 치료한다. 10살이 되어 브랜드는 정규교육을 받으러 영국으로 건너간다.

6년 후 아버지는 말라리아의 악성합병증인 흑수열에 걸려 순교한다. 런던교외 으리으리한 대저택 부유한 가정출신에 뛰어난 미모로 런던미술학교에 다닐 때 남학생들이 서로 경쟁했던 어머니는 평생 집안에 거울을 두지 않고 살며, 남편이 죽은 후 같이 살자는 아들의 간청과 주위 많은 사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내가 없으면 누가 이들을 돌본다는 말이냐?’하며 홀몸으로 아버지의 순교가 헛되지 않도록 지역 원주민들의 친구가 되어 병든 사람을 간호하고, 농사를 가르치고, 고아들을 키우고 복음을 전파하며 여생을 헌신하다가 95세에 생을 마감한다. 인도 선교지에서 브랜드할머니로 불리는 그의 어머니는 전설적인 존재로 남는다. 그가 인도에 방문할 때마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왕비의 잃어버린 왕자처럼 큰잔치를 베풀어 대접하며, 예배당에서 노래와 춤과 공연을 열고 브랜드할머니를 회상하며 기린다.

이처럼 훌륭한 선교사 부모로부터 신앙의 유산을 물려받은 브랜드박사는 영국에서 의학공부를 마친 후 인도로 돌아와 20년간 나병환자들을 치료한다. 그의 헌신적 사랑과 연구업적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루이지아나 카르빌의 미국 국립나병원으로 초청을 받고 미국에서 30년간, 모두 50년간을 고통이 없어 고통당하는 나환자들을 위해 헌신하며 평생을 살아온 그의 이야기는 감동과 눈물 그 자체이다.

이책 서두는 탄야(Tanya)라는 여자아기 이야기로 시작한다. 탄야는 검고 반짝이는 눈과 개구쟁이의 귀여운 네 살짜리 아이다. 엄마는 딸아이가 18개월 되었을 때, 늘 한방에 같이 있다가 잠시 전화를 받으러가느라 혼자 놔둔다. 몇 분 뒤에 탄야의 방에 돌아온 엄마는 끔찍한 광경에 놀라 비명을 지른다. 아기가 하얀 비닐종이위에 물어뜯은 손가락의 피로 빨간 소용돌이를 그리며 혼자 재잘거리며 놀고 있는 것을 목격한 것이다. 탄야는「고통에 대한 선천적 무관심」이라는 희귀한 유전질환을 앓고 있었다. 탄야는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정상이었지만 상처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경고체계가 없었다.

브랜드박사는 나병환자들의 손가락 발가락이 없어져서 나중에는 손과 발을 다 잃게 되는 것이 탄야처럼 고통에 대한 무감각으로 위험을 경고하는 자신의 보호체계의 결여가 원인이 아닌가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나환자들에게도 자신의 위험을 알리는 경고체계가 결여된 점이 무의식적으로 그들 자신을 파멸시키는 것이 아닌가하는 것이다.

뉴기니의 나환자 병원을 방문했을 때, 수용소 근처 마을에 한 여인이 숯불화로위에 고구마 한 개를 꼬챙이에 꽂아 굽고 있었다. 숯불위에 올려놓고 손으로 잡고 바비큐처럼 빙글빙글 돌렸다. 그런데 고구마가 그만 꼬챙이에서 빠져서, 찌르면 찌를수록 점점 더 시뻘건 숯불 속으로 깊이 들어가 버렸다. 그녀가 옆에 앉아있던 노인에 눈짓을 한다. 몸을 질질 끌며 숯불로 다가오더니 타오르는 숯을 손으로 치우고 고구마를 꺼냈다. 그리고는 다시 자기가 있던 곳으로 가서 앉았다. 그의 손은 손가락이 없이 상처와 진물 나는 물집들로 뒤덮인 뭉툭한 손뿐이었다.

며칠 뒤 나병환자수용소에서 집단 검진을 실시했다. 큰 종을 울려 환자들을 소집했다. 한 젊은이가 목발을 집고 붕대를 감은 왼쪽다리로 땅바닥을 쓸며 힘겹게 달려온다. 재빠른 환자들이 그를 따라잡는다. 그러자 그는 목발을 겨드랑이에 끼고 한쪽으로 기우뚱한 걸음걸이로 두발을 의지하여 뛰기 시작한다. 그는 주의를 끌기 위해 마구 손을 흔들면서 달려와 맨 앞에 서게 된다. 그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목발에 의지한 채 서서는 승리에 찬 미소를 짓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붕대는 피로 흥건히 젖었고 왼쪽 발은 좌우로 마음대로 덜렁거리고 있다. 이미 탈구된 발목에 의지해 달렸기 때문에 피부가 압력을 이기지 못해 짓뭉개져있었고 정강이 뼈 끝부분으로 걸었기 때문에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허연 뼈가 땅속에 박혀 작은 돌들과 잔가지들이 골수강에 박힌 것이 보였다.

무릎 밑에 있는 다리를 절단하는 수밖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태였다.

이 두 광경이 오랫동안 브랜드박사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자신에게 이 무고통의 경험이 현실로 다가왔을 때 무서운 경험을 하게 된다. 록펠러재단의 연구프로그램이 끝날 무렵 미국에서 나병선교단체에 강연을 준비할 때 그는 몹시 지쳤고 방향감각을 잃은 데다 가벼운 열병까지 걸려 심히 몸과 마음이 지쳐있었다.

「내가 잠자리에 들려고 했을 때 끔찍한 생각이 무서운 힘으로 나를 강타했다. 발의 반쪽에 아무 느낌이 없었다. 볼펜 끝으로 발꿈치를 찔러보았다. 아무느낌이 없었다. ‘내가 나병을 치료하는 의사에서 나병환자로 비참하게 전락하고 말았다는 것인가?’ 가방을 뒤져 바늘을 찾아 발목 밑 살갗을 찔러보았다. 아무 통증이 없었다. 더 깊이 찔렀다. 그러나 아무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 찔린 구멍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전율했다. 고통이 느껴지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느낄 수 없었다. ‘나는 나병환자들에 대한 편견에 대항하여 싸웠다. 나는 접촉의 전염가능성을 비웃으며 동료들에게 위험이 거의 없다고 확신시켜오지 않았던가? 이제 내가 감염되었다는 이야기가 나병을 다루는 사회에 널리 퍼질 것이다. 그러면 내가 하던 일, 그리고 내 인생은 어떻게 될 것인가?’ 불안과 절망에 빠져 밤을 지새우다 날아 밝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병의 흔적을 찾기 위해 코와 귓불을 살펴보고, 병이 얼마나 진행되었는지 감을 잡기위해 감각을 상실한 부분을 정밀하게 표시하려했다. ‘나는 앉아서 심호흡을 하며 바늘 끝으로 발꿈치를 찔렀다. 나는 비명을 질렀다. 마치 전기충격처럼 생생한 그 통증만큼 유쾌한 감각을 나는 느껴 본적이 없다. 나는 나의 어리석음에 큰 소리로 웃어댔다. 나는 나병에 걸리지 않았다. 단지 피곤에 지친 여행자가 질병과 과로로 신경쇠약에 걸렸을 뿐이다. 잠못이룬 단 하룻밤이 나에게 의미있는 순간이 되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하나님 ,고통을 주셔서 감사 합니다’라고 기도했다. 그 기도가 이상하고 모순되며 자학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내게는 그것이 계속적으로 밀려드는 감사의 제목이 되었다. 나환자가 고통을 느끼는 우리를 얼마나 부러움의 눈길로 바라볼지 그 때 처음으로 이해했다. 이제 나는 고통을 인간의 신체 중에 가장 잘 고안된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고통의 라틴어 어원인 포에나(Lat. poena) 그것은 우리가 모두 살아있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신체적인 징벌이다. 나는 나 자신이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두려움 뿐 아니라 고통을 직접 겪어봄으로써 내안에 놀라움과 감사의 태도가 생겼다. 나는 고통 없는 삶을 원치 않는다.」

‘아기를 밴 여자는 낳을 때가 되면 산고를 가진다. 그러나 일단 아기가 태어나면 그녀는 세상에 태어난 아이에 대한 기쁨으로 그 해산의 고통을 잊어버린다.’

브랜드박사의 위대한 업적은 나환자가 자신의 나쁜 살이 바로 썩게 하는 원인이 아니라는 발견이다. 실제로 그들의 살과 뼈는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건강하며 또 나병은 잘 전염되지도 않는다. 그들에게는 고통을 느끼는 능력이 결핍된 것뿐이다. 혈액의 순환이 그들 몸에 주요부분에 단절됨으로서 신경의 말단조직이 죽는 것이다. 신경의 말단조직이 죽음으로 해서 몸에 위험을 감지하는 능력이 없는 것이다. 그는 당뇨환자들도 나환자들과 똑같이 통증을 느끼지 못해 상처 난 발에 궤양이 있는 상태로 계속 사용하여 의사를 찾을 때면 다리를 절단해야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우리는 고통의 삶으로부터 벗어난 생활을 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사실상 고통이 없다는 것은 나환자들에게 가장 큰 적이다. 계속 반복하여 그들은 그들 자신이 상처를 입히고 찔리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모두가 고통을 느끼는 능력이 있다는 것에 하나님께 감사하여야한다.

시편 71편에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하나님은 모든 고난을 성도의 유익을 위하여 선용하신다. 고난은 또한 문제가 아니라 기회이고 훈련과정이며 변장된 축복이기도 하다. 왜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싫어하는 고난과 환란을 주실까? 만일 고난이 없다면 인생의 꽃은 피지 않는다고 한다.

하나님은 지혜자라. 우리가 아무리 싫다고 해도 불행의 밤을 주시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어가게 만드신다. 하나님은 이 무서운 사망의 골짜기를 인간에게 주셔서 자신이 우리를 위하여 세우신 목적을 달성하시는데 최상의 방법으로 사용하신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정금같이 나오리라’(욥23:10)

하나님은 고난이라는 연단을 통하여 찌꺼기는 없애고 깍을 것은 깍고 버릴 것은 버리신 후에 자신의 형상을 우리 인격에서 찾으신다.

Ezer

       
사회봉사부 상반기 활동 관리자 2012.07.20
나는 배웠다(오마르 워싱턴 ) 이기언 2012.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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