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제12주
이충기목사 2005-06-29 11:28:30 542
 

      성경강해 12주 -마지막째-


  베드로전후서(I, II Peter)


      박해를 받고 있는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쓴 베드로사도의 편지다. 집필 장소는 ‘함께 택하심을 입은 바벨론의 교회’(5:13)였다. 앗수르의 바벨론, 애굽의 바벨론, 로마설 등이 있는 바, 종교개혁 전에는 로마설’, 종교개혁 시에는 ‘앗수르의 바벨론설’, 그리고 근대에는 다시 ‘로마설’을 지지한다.

     메시지는 예수님 재림에 대한 기대와 함께 일상적인 삶에 성실할 것들을 말한다(벧전3:1-7). 물론 극심한 박해 아래 있는 성도들에게 필요한 ‘위로’와 ‘격려’로 일관한다. 그 격려의 주제를 ‘산 소망’(벧전1:3)에 두고 있다. 그래서 ‘산 소망의 서신’이라고도 한다. 특별히 당시 거짓교훈의 산실이었던 ‘영지주의’에 대한 경계를 하고 있다. 그 극단 중 하나인 도덕 폐기 론 적 경향에 대해 유혹에 빠지지 말도록 주의 한다.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의 공로’는 기독교 구원론의 진수임을 역설한다(벧전1:19).

중요성구: 벧전1:22-25(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 벧던3:1-7(가정생활), 벧후3:8-10(하나님 앞에서의 시간).


  요한1.2.3서(I. II. III John)


      본문에 필자의 이름은 없다. 그러나 초대교회 대부분의 교부들의 증언에 따라 사도 요한을 필자로 본다. 예수께서 행하신 일의 목격자이며, 편지 전체에 흐르는 권위 있는 표현들, 요한복음서의 표현방식과 매우 유사한 점들(예, 빛과 어두움, 생명과 죽음, 진리와 거짓, 사랑과 미움 등의 예리한 대조)을 그 증거로 든다(요일1:1,4,6-7과 요1:1; 16:24; 3:19-21; 요일3:8,14과 요8:44; 5:24등).

      수신은 소아시아 지역의 여러 교회에게 보낸 회람서신으로 이해한다. 요한3서의 수신자는 가이오이다. 영지주의의 거짓된 가르침을 논박하고(요일2:26), 믿는 자들에게 구원의 확신을 심어주기 위해(요일5:13) 기록했다. 전체의 주제는 ‘서로 사랑하자’였다(요일4:8). 그러나 기독교인의 사랑에는 분별이 있어야 했다. 그래서 미혹케 하는 자들과는 인사도 하지 말라했다.(요이1:9-11).

중요성구: 요일4:7-21(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추방). 요일5:13(영생 있음을 알게 함).


  유다서(Jude)


      필자는 예수님 동생 곧 야고보 바로 밑의 서열인 유다로 본다. 야고보와 같이 유다도 예수님 생전에는 예수님을 따르지 안했다(요7:5). 예수님 부활하신 후 신자가 되었다. 거짓 교사들로 인한 교회의 혼란을 막기 위한 글이었다. 특별히 함부로 말하는 거짓교사들의 간계를 깨닫게 하기 위해, 사도들의 가르침을 상기시킨다(17절).

     거짓 교사들의 잘못된 가르침과 부도덕한 행실은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 곧 신자들에게 도덕적 책임이 필요 없다는 식이었다. 2) 거짓교사들의 신비체험, 특별히 종교적 황홀경에 대한 과장된 이야기들로 인해 신앙의 정도를 그르치고 있었다. 3) 값싼 은혜의 부산물인 도덕적 방종을 조장했다.

중요성구: 1:20-21.


  요한계시록(The Revelation)


      필자는 사도 요한으로, 로마 황제 도미티안 통치 말년(A.D.95년경)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된다. 쓰여진 장소는 에게 해의 밧모섬이다. 사도 요한이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 때문에 유배당해 있던 어느 주일 날, 성령의 감동을 받아 신비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요한에게 나타나신 예수께서는 환상 중에 본 바를 기록하여 박해를 받고 있던 교회들에게 보내라고 분부하셨다.

     본서의 성격은 ‘계시’(헬, ‘아포칼립시스’, 1:1)요. ‘예언'(1:3)이며, ‘서신’(1:4; 22:21)이다. ‘계시’란 숨겨진 어떤 것이 드러남을 뜻한다. 본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중재를 통해 하나님께서 드러내주신 바를 담고 있다. ‘예언’이란 종말론적인 역사 완성의 빛을 현재에 조명해 주심에 그 뜻이 있다(참조, 벧후1:19). 서신의 수신자는 지금의 터키 지역에 있던 일곱 교회였다. 당시 교회들은 외적인 박해를 당하여 배교의 위험에 처해 있었다. 그리스도의 궁극적 승리를 제시해줌으로써, 위로와 용기 그리고 소망을 주려는 것이 본서의 의도였다.

     이상에 언급한 특성으로 인해 해석상의 견해들이 다양하다. 주장하는 해석들을 그 특성들로 구분해보면 다음과 같다.

1) 과거파: 사도 요한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한다는 입장(예언?).

2)역사파: 세계사(또는 교회사) 전체를 제시해 준다는 입장(때와 시간 계산의 자료로 삼는 것?).

3)온건 미래파: 처음 3장을 제외하고는 예수님 재림 직전의 사건들로 이해하는 입장(2-3장 교회들의 모습이 당시의 교회들만?).

4)극단 미래파(세대주의): 1:19절에 근거한 해석으로 1장-부활하신 예수님의 환상, 2-3장은 교회 전체를 다룸, 4장이하는 장차 될 일을 다룬다는 입장(교회를 임시 방편으로 이해하는 문제).

5)이상주의파(혹은 역사 철학파): 시공간의 제한을 받는 진리를 담고 있다고 보지 않고, 영원한 진리, 곧 하나님의 도덕적 통치 원리, 선악간의 투쟁, 선의 궁극적 승리를 말하고 있다고 보는 입장. 베드로 사도가 말한 억지로 풀어보려는 유혹을 뿌리치고 항상 성령의 도우심을 바라며 읽어야 할 말씀(벧후3:16).

중요성구: 3:20-2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성경강해 제11주 이충기목사 2005.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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